2016.09.22 17:43

지영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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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표1.jpg




도서분류 예술 / 국악 / 한국역사인물

총 서 명 경기관광공사 지역문화한마당 03

도 서 명 지영희를 말한다

부 제 명 다시 보는 지영희 명인의 예술 세계

지 은 이 이보형, 이용식, 이진원, 김유석,
최태영, 김수현, 전지영, 김수아, 노재명

출 판 사 채륜

정 가 27,000

발 행 일 201695

상세정보 반양장, 339, 크라운판 변형(163mm×235mm), 책등 높이 19mm

I S B N 979-11-86096-39-0 93670



책소개.png

한국 음악의 독립운동가

지영희의 예술 세계를 탐구하다

천재적인 음악 재능과 지도력 그리고 불타는 예술혼을 가진 전무후무한 예인인 지영희. 그의 예술 세계를 다각도로 탐구한 여러 글을 엮은 책이다.

한국 음악사에 무수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우리는 지영희를 잘 모른다. 심지어 그가 평생을 바쳐 연구하고 지키려 했던 전통 음악에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전통 음악은 우리 영혼의 꽃이자 삶의 축복이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꽃에 물을 줘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이 태어났다.

이 책에는 민족음악수호하는 데 평생을 바친 그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가 추구했던 예술 세계와 우리 음악이 가지는 가치를 탐구하는 여러 관점의 글이 담겨 있다. 더불어 각 글에 대한 논평이 함께 포함되어 있어 글을 읽으며 느끼는 학문적인 궁금증도 해소될 수 있다.

연구를 통한 학문적 관점에서의 글이기 때문에 위대하다라는 감상적인 결론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영희의 예술 세계와 우리 음악의 가치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출판사서평.png

평생을 다해 민족음악을 수호한

지영희를 말한다

유능한 연주자, 훌륭한 작·편곡자, 통솔력 뛰어난 지휘자, 우수한 민속음악학자, 모범적 지도자. 모두 국악계의 거장지영희를 수식하는 말이다. 지영희는 민족의 마저 핍박 받던 일제강점기에도 한국의 전통음악을 연구하고 지켜내어 한국 음악의 독립운동가라고 부를 만한 인물이었다. 그에게 민속음악이란 민족의 혼이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리고 그 덕분에 현재는 한국의 전통음악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업적은 물론 우리 음악에도 너무 무심했다. 전통음악은 우리 영혼의 꽃이며 우리 삶의 축복이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꽃에 물을 줘야 한다. 우리만의 독특한 음악예술이 있다는 그 자랑스러움을 선물해 준 지영희 선생을 이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특별히 우리나라 대표 전통축제무용곡인 꼭두각시를 만드신 분이 지영희 선생이라는 논증적 고증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동안 잊혀졌던 민족음악 수호영웅지영희 선생에게 생명을 불어 넣고 우리 영혼의 꽃인 전통음악에 대한 관심을 드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지은이.png

이보형(한국고음반연구회 회장)

이용식(전남대학교 예술대학 국악학과 교수)

이진원(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김유석(서울대학교 박사)

최태영(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김수현(한국학중앙연구원 겸임교수)

전지영(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김수아(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

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지영희(池瑛熙) 소개

본명은 지천만(池千萬)으로 19099, 경기도 평택에서 경기 세습무 지용득 명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항련에게 호적을, 정태신에게 양금을, 지용구에게 해금을, 양경원에게 피리를, 김계선에게 대금풍류를, 방용현에게 대금산조와 풍류를, 최군선에게 농악을, 오덕환에게 무용 장고를, 박춘재에게 경기소리와 서도소리를, 신쾌동에게 거문고산조를, 김상기에게 거문고풍류를 배웠다. 이처럼 여러 무악 명인들에게 장단 등을 배웠으며 가야금과 아쟁은 자득했고 해금산조, 피리산조 연주자로 유명하다.

1937년 조선음악연구소에 입소하여 악사가 된 이후, 1938년에는 한성준무용단(韓成俊舞踊團)의 반주악사로 활약하였으며, 1946년에는 서울중앙방송국 전속국악사가 되었다.

1960년에는 국악예술학교 교사로서 유망한 신인들을 많이 길러냈다.

1962년 한국대표로 참석하여 프랑스 파리 세계민속예술대제전에서 우리 음악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것은 매스컴을 통해 널리 소개되었다.

1963년 한국국악예술학교 부설 학생국악관현악단을 조직하였으며, 1965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 지휘자 취임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1967년에는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1973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 기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76년 미국 하와이에 한국민속예술원을 창설하고 활동하였으나 1980년 작고하여 우리 국악계에 평생을 헌신한 고귀한 삶을 마감하였다.



차례.png


첫인사말우리 영혼의 꽃에 물을 주기 위해_ 오민아(경기관광공사 스토리텔링 작가)

 

기조발표지영희 선생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결정론적 평가_ 이보형(한국고음반연구회 회장)

 

 

경기 지역 기악 명인의 음악활동: 일제강점기 방송활동을 중심으로_ 이용식(전남대학교 예술대학 국악학과 교수)

경기 지역 기악 명인의 음악활동에 대한 논평(임혜정)

 

<꼭두각시> 무용곡의 탄생에 대한 검토_ 이진원(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꼭두각시> 무용곡의 탄생에 대한 검토에 대한 논평(박소현)

 

지영희 명인의 산조장단론_ 김유석(서울대학교 박사)

지영희 명인의 산조장단론에 대한 논평(김보경)

 

지영희·임선문 해금경기시나위 비교분석: 도살풀이·도살풀이모리 장단을 중심으로_ 최태영(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지영희·임선문 해금경기시나위 비교분석에 대한 논평(강봉천)

 

지영희의 음악 교육론_ 김수현(한국학중앙연구원 겸임교수)

지영희의 음악 교육론에 대한 논평(권혜근)

 

지영희 삶에 대한 해석과 비판적 사유_ 전지영(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지영희 삶에 대한 해석과 비판적 사유에 대한 논평(전인평)

 

개량악기 현종縣鐘에 관한 연구_ 김수아(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

개량악기 현종縣鐘에 관한 연구에 대한 논평(이상규)

 

 

더 보는 자료지영희·성금연·지성자 명인 유성기음반 가사지_ 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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