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분류 역사 / 세계사 / 교양세계사
도 서 명 영웅, 그들이 만든 세계사
부 제 명 역사를 뒤바꾼 결정적 순간들
저 자 명 이내주
출 판 사 채륜
정 가 15,800원
발 행 일 2020년 2월 28일
상세정보 반양장, 348쪽, 신국판(152mm×225mm), 높이(18mm)
I S B N 979-11-90131-03-2 03900
세계사를 뒤바꾼 주요인물의 발자취를 찾는 여정
역사 속 주요인물의 행동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다시 보는 책.
역사는 균열과 변화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왔다. 세상은 짧게 보면 매일 같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길게 보면 기존의 것을 깨부수고 새로운 것을 쌓는 일의 반복이다. 길고 긴 세계사의 흐름 속에는 시대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사건의 배후에는 늘, 물꼬를 트는 결정을 주도한 영웅적 인물이 존재했다.
이 책은 바로 그들에게 주목했다. ‘왜’ 하필 그 ‘순간’에 그런 ‘결단’을 내렸고 그 결단이 이후 어떤 역사를 불러왔는지, 현대적인 의미는 무엇인지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로마의 멸망, 십자군 전쟁, 종교개혁, 미국 독립선언, 러시아 혁명, 세계 제1, 2차 대전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계사 속 주요 사건 곳곳에 숨은 인물을 살피는 이 책이 역사에 대한 흥미를 높이고 삶에 유용한 깨달음을 얻도록 도울 것이라 믿는다.
역사의 변곡점, 그 뒤에는 늘 어떤 결단을 내린 인물이 있다
역사는 여러 가지 관점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관점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대체로 역사의 흐름을 이끈 주역을 누구로 볼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된다. 물론 역사는 시대, 국가 그리고 사건별로 다채롭고 독특하게 전개되어 왔다. 또한 해석하는 역사가의 경험과 상황에 따라 관점이 달라지고 그 관점에 대한 타당한 의미와 정당성을 부여해 왔을 것이다.
이 책은 그중 ‘엘리트주의적’ 관점으로 집필되었다. 왜냐하면 역사의 흐름 속에는 시대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계기로 작용한 사건들이 있고, 이러한 사건의 배후에는 물꼬를 트는 결정을 주도한 인물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동서양(주로 서양)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결단을 내린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때 그는 왜 하필이면 그렇게 행동했을까?”를 고찰해보려는 시도이다.
소수의 개인에 중점을 두는 이런 행동과학적 접근법이 갖는 한계는 있지만 역사에 대한 흥미를 높이고 역사 속에서 삶에 유용한 교훈을 찾게 해줄 발판이 되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 이내주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사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
이 책은 시대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멀게는 고대 로마부터 가까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까지 우리가 익히 아는 세계사 속 주요 사건들을 토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단순히 사건만 나열하는 책이 아니다. 마르틴 루터는 왜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로마가톨릭과 싸웠는지? 나폴레옹은 왜 군사원정을 떠났던 이집트에서 몰래 파리로 돌아온 것인지? 등등 특정 인물의 행동에 궁금증을 품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즉 사건이 발생한 바로 그 시점에 그 인물은 어떤 이유로 그런 결단을 내렸고 그 결단이 이후 어떤 역사를 불러왔는지 현대적 관점에서 의미는 무엇인지 종합적으로 살피는 것이다.
대상독자를 ‘역사(서양사)에 흥미가 있는 일반인’에 두고 집필한 만큼 관련 연구결과를 나열하거나 깊은 학문적 지식이 필요한 부분은 없다. 읽는 그대로 아주 쉽게 이해된다. 가급적 어려운 어휘를 쓰지 않고 간결하게 설명한 덕분이다.
저자 이내주는 현재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명예교수로 긴 시간 역사학을 연구해온 전문가이다. 특히 전쟁사에 매우 해박하다. 이렇게 오랜 세월 쌓인 저자의 깊은 통찰력은 역사적 사건 뒤에 숨은 본질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독자 역시 그의 시선을 빌려 세계사를 총체적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학창 시절 배운 세계사는 연도와 함께 달달 외우느라 헷갈리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세계사를 다시 본다면 역사 속 각 사건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역사는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준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될 것이다.
이내주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영국 서식스 대학교에서 영국근현대사 전공으로 역사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사학회 회장, 한국연구재단 책임전문위원, 그리고 학술지 『서양사론』 및 『군사연구』 편집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명예교수 및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 연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영국 과학기술교육과 산업발전, 1850~1950』, 『(흐름으로 읽는) 근현대 세계사』, 『전쟁과 무기의 세계사』, 『군신의 다양한 얼굴』, 『전쟁과 문명』(공저)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군수산업과 경제발전』, 『배틀: 전쟁의 문화사』, 『전략문화와 세계 각국의 전쟁수행방식』 등이 있다.
세계사 속 영웅의 발자취를 찾아서
기원전 49년 루비콘강 도하
카이사르는 왜? 반역인 걸 알면서도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강을 건넜을까?
313년 밀라노 칙령 공포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왜? 그동안 박해해 온 그리스도교를 공인했을까?
476년 서로마제국 멸망
오도아케르는 왜? 강압적으로 서로마제국을 멸망시켰을까?
726년 성상파괴령 선포
레오 3세는 왜? 성상숭배를 금지시키려고 했을까?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
카를 마르텔은 왜? 병력을 이끌고 프랑스 남서부로 황급히 달려갔을까?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
윌리엄 1세는 왜? 노르만 공작임에도 잉글랜드 왕위쟁탈전에 참여했을까?
1077년 카노사의 굴욕
하인리히 4세는 왜? 황제의 자존심을 버리고 교황에게 용서를 빌어야만 했을까?
1095년 십자군 원정 호소 연설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왜? 십자군 전쟁에 불을 붙였을까?
1346년 흑사병 창궐
자니베크는 왜? 전염병으로 죽은 병사를 도시의 성벽 안으로 날려 보냈을까?
1429년 오를레앙 공성전
잔 다르크는 왜? 평범한 소녀가 기사처럼 무장한 채 오를레앙으로 달려갔을까?
1453년 동로마제국 멸망
메흐메트 2세는 왜? 콘스탄티노플 성벽 앞에 초대형 대포를 배치했을까?
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
콜럼버스는 왜? 무모하게도 서쪽으로 항해했을까?
1517년 95개 조 반박문 발표
마르틴 루터는 왜?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로마가톨릭과 싸웠을까?
1519년 아스테카제국 침공
코르테스는 왜? 전력상 열세에도 불구하고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공격했을까?
1534년 수장법 선포
헨리 8세는 왜? 로마교황청과 결별하고자 했을까?
1649년 잉글랜드 공화국 수립
크롬웰은 왜? 국왕인 찰스 1세를 처형했을까?
1633년 갈릴레오 종교재판
갈릴레오는 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독백해야만 했을까?
1665년 만유인력의 법칙 발견
뉴턴은 왜?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심각한 의문에 빠졌을까?
1685년 낭트칙령 폐지
루이 14세는 왜? 국가에 안정을 선물한 신교도의 종교 자유를 무효화시켰을까?
1697년 서유럽 사절단 파견
표트르 대제는 왜? 장기간 제위를 비운 채 서유럽으로 떠났을까?
1740년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
프리드리히 대제는 왜? 오스트리아의 왕위계승 문제에 끼어들었을까?
1776년 미국 독립선언
워싱턴은 왜? 영국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독립군 총사령관이 되었을까?
1799년 브뤼메르 쿠데타
나폴레옹은 왜? 군사원정지 이집트에서 몰래 파리로 귀환했을까?
1839년 아편전쟁
임칙서는 왜? 중국에 들어온 인도산 아편을 몰수·폐기했을까?
1862년 철혈정책 천명
비스마르크는 왜? 철鐵과 혈血에 의한 통일을 주장했을까?
1863년 노예해방 선언
링컨은 왜? 연방의 분열 위기에도 노예제도를 없애려고 했을까?
1890년 세계정책 표방
빌헬름 2세는 왜? 러시아와 맺은 재보장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을까?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프린치프는 왜? 합스부르크제국의 황태자 부부를 암살했을까?
1917년 러시아혁명
독일군은 왜? 혁명가 레닌에게 러시아로 돌아갈 밀봉 열차를 내주었을까?
1936년 시안사변
장쉐량은 왜? 아버지처럼 따르던 장제스를 감금했을까?
1941년 독소전쟁
히틀러는 왜? 독소불가침 조약을 깨고 소련을 침공했을까?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트루먼 대통령은 왜? 일본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를 결심했을까?
끝으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카이사르는 법률가이자 웅변가로 출발해 정치가로 명성을 날렸으나 그가 로마의 지배자가 될 수 있던 실질적 요인은 로마군단병들의 존경과 충성을 얻은 위대한 장군이었다는 사실이다.
- P.20
보다 근원적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간의 갈등과 반목의 골을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다. 십자군 원정대가 보인 종교적 광신주의와 그로 인한 잔인한 학살행위는 팔레스타인과 주변 지역 무슬림들 사이에 격렬한 증오심을 남겨 놓았다. 이러한 두 종교 간의 숙명적 적대 관계는 팔레스타인을 떠나가는 최후의 십자군 부대를 향해 토해 낸 당대 이슬람 연대기 작가의 다음 언급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신이여, 다시는 그들이 이곳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소서.”
- P.89
전쟁의 명칭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아편전쟁의 결과 그동안 중국이 대외교역에서 유지해 온 광둥체제가 해체되고 서양 국가들과의 관계가 근대적인 조약체제로 개편됐다는 점이었다. 더구나 이러한 새로운 시스템의 문을 연 남경조약은 중국 측에 관세 자주권의 상실, 영사재판권의 인정, 최혜국 조항의 수용 등을 강제한 ‘불평등조약’이었다. 자국의 주권을 침해당한 남경조약을 기점으로 청조 중국은 불가피하게 영국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던 자본주의적 세계경제 질서 속으로 편입되기 시작했다. 아편전쟁을 중국 근대사는 물론 동아시아 근대사의 출발점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PP.261~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