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분류 여행/국내여행/전라도
도 서 명 전주편애
부 제 명 전주부성 옛길의 기억
지 은 이 신귀백·김경미
출 판 사 채륜서
정 가 14,800원
발 행 일 2016년 04월 30일
상세정보 반양장, 282쪽, 크라운판 변형(165mm×215mm), 높이 17mm
I S B N 979-11-85401-12-6 03980
전주라는 상차림에 대한
편파적 보고와 그 사용기
핫 플레이스 전주. 여행지로 누구나 한 번쯤은 떠올려 보는 곳. 도시 그 자체로 전통이면서도 적당히 현대적인, 게다가 요즘 빠질 수 없는 ‘먹방 여행’이 가능한 곳. 그 중심에는 ‘한옥마을’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한옥마을은 식상하다. 수십 개씩 올라오는 전주 여행기는 마치 패키지여행인 듯 비슷한 코스만 맴돌고 있다. 이제 관광객들은 전주의 다른 곳을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요즘 전주 시내의 객사와 풍남문 주변 시장 곳곳을 둘러보는 관광객들을 볼 수 있다. 안내서가 필요하다.
이 책은 사소한 공간 해설서에 그치지 않는다. 여기 전주부성에 백반 같은 낯익은 인물과 공간을 채우는 새로운 이야기가 들어있다. 돋보기로 전주의 근현대를 둘러본 후, 조각난 천으로 만든 밥상보를 걷으면 소담한 백반상이 차려진 전주를 맛볼 수 있다. 전주부성 옛길의 기억을 따라, 걷고 해찰하다 먹고 쉬는 거다. 이렇게 걷다 보면 누구라도 전주를 편애하게 되리라.
‘전주’를 벗어난 ‘전주’
왜 다시 전주인가?
누구나 떠올리는 여행지 전주. 한옥마을 떴다. 다 돌아봤다. 이제 사람들은 한옥마을 밖의 다른 곳을 찾는다. 그래서 요즘 전주 시내의 객사와 풍남문 주변 시장 곳곳을 둘러보는 관광객들을 볼 수 있다. 안내서가 필요한 시점이다.
《전주편애》라. 편파성을 달고 있는 제목만으로도 궁금하다. 전주라는 도시의 매력은 몰려드는 관광객 숫자만으로 충분히 검증된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왜?
전주의 매력은 우리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니다. 전주가 품은 이야기, 콘텐츠는 더 재미나고 무궁무진하다. 몇 가지 물음을 던져본다.
왜 전주는 전통도시인가?
전주는 ‘품’ 자형 성곽도시로 객사를 중심으로 감영과 부영을 거느린 조선의 3대도시였다. 중앙에 조정을 두고 동서남북 문 앞에는 시장을 두니 바로 정치와 경제다. 풍남문에서는 종을 치고 거기 남문시장에서 전국의 쌀값이 결정되었다.
왜 영화의 도시인가?
창극의 임춘앵이 무대에 서면 부성이 난리가 났다. 김진규와 박노식은 전주가 키운 스타들이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골 아픈 영화 스터디 기간이고 전주의 극장들은 아직도 느와르 전쟁 중이다.
왜 전주는 예인이 많은가?
완판본이 전주에서 출판된 것, 창암과 석전 강암 등 위대한 서예가가 나온 것은 질 좋은 종이와 붓 말고도 전주사람들의 안목 때문이었다. 전주는 지식기반도시였다. 거기 이응노와 현제명, 박봉우와 박배엽이 있다.
왜 전주음식이 맛있는가?
간장과 된장을 여물게 하는 햇빛 그리고 여인들의 비손과 먹이고 나누려는 마음이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을 만들었다. 국밥집 할매는 지난 밤 거리의 청춘들이 한 짓을 알고 있었기에 욕을 퍼부어댔다. 유네스코 맥주창의거리는 평등의 끝판이다.
왜 전동성당과 경기전은 서로 잘 어울리는가?
조선과 불화한 천주교도들은 풍남문에 효수되었고 이후 중국인들이 전동성당 벽돌을 쌓았다. 태조 어진은 참죽나무 할배를 비롯한 노거수와 대바람 속에서 카메라를 돌리는 영화인들을 품어준다.
왜? 전당포는 골목에 있는가? 왜? 필방에서 부채를 사 가는가?
왜? 최고요정에서 남자들은 명주바지를 갈아입는가?
왜? 전주만 가맥이 통하는 동네인가? 이 책이 답을 알려줄 것이다.
도시 스토리텔링
이야기가 관광콘텐츠가 되다
전주는 반짝이는 것 같으면서도 좀 촌스러운, 하지만 전통이 산재하는 우아한 도시다.
이 책 《전주편애》는 부성 안에 자리 잡은 객사와 변해버린 도청, 풍남문과 전동성당, 이창호 국수의 화점과 비빔밥 삼국지를 고명처럼 올려놓는다. 그렇다고 이 책은 사소한 공간의 해설서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에만 몰두하여 전주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않고 옛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전통과 현대가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전주라는 도시와 이 책이 꼭 닮아있다.
전동성당과 전주국제영화제의 모던함, 행원이라는 요정과 질옥이 가지는 여유와 빈티지, 박봉우 시인과 막걸리집의 널널함, 비틀즈가 풍선 들고 풍년제과 교차로를 건너는 듯한 즐거움, 창극배우 임춘앵의 애수는 주관을 넘어 편애하게 만든다. 게다가 콩나물국밥집의 할매가 욕을 한 이유를 ‘나는 지난밤에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고 표현한 것은 재미지다. 전주의 다방학개론, 비빔밥삼국지를 겉절이처럼 늘어놓아 한상 그득하게 차려진다. 이 얼마나 풍성한 접근인가.
《전주편애》는 전주 가맥동네를 ‘유네스코 맥주창의거리’라고 허세를 부린다. 그러면서 전주가 가지는 술 앞의 평등을 이야기 한다. 전주가 그저 아름답다고 편애하는 것이 아니라 둘러 볼 가치가 있다고, 해찰하는 즐거움이 있다고 편애하는 것이다.
《전주편애》라는 망원경과 누진다초점렌즈를 손에 들고 창극골목과 배우골목을 걸으며 해찰하다보면 금방 배가 고파질 것이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전주 이야기
당신도 전주를 편애하게 될 것이다
혹자는 이 책도 그저 그런 전주 여행 가이드북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책뿐만 아니라 전주 여행 정보는 인터넷에 널리고 널린 게 아니냐면서. 이 책은 한옥마을 가는 법, 인증샷을 남기기에 좋은 포토존 혹은 어느 집의 꼬치가 맛있더라 하는 몇 분의 스마트폰 검색만으로 쉽게 알 수 있는 그런 정보 이상의 것을 제공한다.
초기 전당포인 질옥과 일본식 건물 박다옥, 전주객사 풍패지관 현판에 얽힌 이야기는 새롭다. 경기전이나 객사에 얽힌 디테일이 소박한 권위를 가지는 도시 이면에는 좁은 골목길이 자리한다. 여행 선수들은 그 오래된 건물 뒤 자전가가 받쳐진 골목이 이방인으로서 추억에 잠겨 전주라는 도시가 ‘근대의 모던함이 함께하는 편안한 도시’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전주 바깥사람들에게는 한 번 살아보고 싶은 도시이다. 번듯함에 지친 사람들이 가보고 싶은.
최일남, 양귀자, 은희경 같은 뛰어난 소설가, 시인 박봉우와 김용택이 그리고 허장강과 박노식 같은 배우들의 이야기를 이 전주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층민중이 뒷받침하는 전주의 겉과 속, 빛과 그림자가 들어있다.
객사와 풍남문 뒤 골목골목을 돌아볼 수 있는 관광안내서 역할로 혼자서 잘 노는 사람을 위한 필수재다. 입담 좋은 저자는 인터넷에 없는 따끈한 내용들로 전주를 편애한다. 매일같이 전주에서 술을 마시고도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전주를 사랑한 사람이 쓴 날카롭고도 따뜻한 글이다.
당일치기 여행지로 전주가 심심치 않게 꼽힌다. 이 도시가 가진 진짜 이야기를 안다면 결코 전주는 당일치기 여행지가 될 수 없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전주의 이야기를 따라 걷다 보면 하루가 모자라다. 그리고 그렇게 걷다가도 해가 지면 1차로 막걸리 2차로 가맥집에서 황태에 맥주를 마시고 콩나물국밥으로 속을 달래는 전주 술 문화의 낭만을 직접 느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전주를 그저 ‘먹방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으로만 알고 있다면. 한옥마을에서 한복체험을 하며 사진 몇 장 건질 수 있는 곳으로만 알고 있다면. 이 책 《전주편애》를 읽어볼 것을 적극 권한다. 당장에라도 전주로 떠나고 싶어질 테니.
신귀백
전북작가회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멤버로 얽혀 문학과 영화를 넘나들며 많은 산문과 평론을 쓰는 글쟁이다. 평론가 직함으로 쓴 《영화사용법》이 제법 팔렸다. 장편 다큐멘터리 〈미안해, 전해줘〉를 극장에 걸며 감독소리를 듣기도 했다. 우석대학교에서 콘텐츠와 시나리오를 강의하는데, 진짜 글을 쓰려고 한다.
김경미
장소적 기억과 스토리로 관광콘텐츠를 생산하는 관광학박사이자 문화기획자이다. 전북전통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지역전통문화의 시대적 가치를 찾아 연구하고 글을 쓴다. 전주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겸임교수로 관광코스개발 및 관광상품기획 등을 강의하며 인문관광의 실천적 적용을 위해 애쓰는 중이다.
두 사람은 설문해자(說文解字)수업과 전북영화비평포럼의 인연으로 의기투합하였다. 전주부성에 묻힌 역사와 기록을 꺼냈고 덕진연못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책으로 묶고 있다.
여행을 시작하며
Ⅰ. 全州府城 : 시간에 묻힌 기록을 꺼내어
여는 글 : 전주성
축성과 기록의 달인, 조현명
품자형 성곽도시
헐리는 성벽과 신작로
Ⅱ. 北門半徑 : 영화의 거리에서 객사까지
여는 글 : 백 투 더 퓨처
모던 스트리트, 걷고 싶은 거리
영화스터디, 전주국제영화제
지프거리, 영화의 거리
시네마천국, 디지털독립영화관
극장의 영고성쇠
전주의 골목들
창극골목
배우골목
주전부리골목
B-Boy 스핀 오디세이
한국의 로트렉, 손상기의 전주시대
전주의 위엄, 객사
Ⅲ. 西門風俗 : 패서문에서 감영까지
여는 글 : 서세동점의 비정성시
세 자루의 칼
음악가 현제명과 서문교회
다이쇼마치의 왜풍
이응노 화백의 청년시대
전주의 화점, 이창호 국수 생가
전주는 중국음식도 맛있다
Ⅳ. 府城中心 : 전주의 배꼽자리
여는 글 : 그들만의 화양연화
전라감영의 북콘서트
선화당 회화나무
멋진 당호, 풍락헌
전주 미 문화원과 공보관
전주의 신작로
산업은행을 사자던, 시인 박배엽
갤러리, 전주의 오랜 다방들
비빔밥 삼국지
Ⅴ. 南門風景 : 풍남문에서 객사까지
여는 글 : 남문이 전주다
종을 치던 도시 전주, 풍남문
살구꽃 정원과 여걸 허산옥
돈 감옥, 질옥
전주 서권기의 중심, 필방
전주 방짜, 유기장 이종덕
청바지 골목 혹은 고물자골목
음식이 최고, 성불여식
남부시장 레알 뉴 타운, 청년몰
한방페스티벌, 전주약령시
Ⅵ. 東門文化 : 완동문에서 팔달로까지
여는 글 : 꽃피운 문화, 동문예술거리
시크릿 가든, 경기전
참 죽이는 나무, 참죽나무
전주 중앙초 야구부
전주 지식의 텃밭, 동문 서점거리
촉탁사서, ‘천하의 박봉우’ 시인
유네스코 맥주 창의거리
해 뜰 때 장에서 먹는 국밥?
선각사, 전북금융조합연합회
모자박물관
전주 민주화의 거리
옥터와 왕버들 한 그루
지독한 한지
Ⅶ. 風流全州 : 이 어찌 좋지 아니한가
김사인의 〈전주〉
정윤천의 〈전주〉
이병천의 〈전주유람타령〉
신귀백의 〈전주막걸리가〉
여행을 마치며
이번 여행에 도움을 준 자료
황태 장맛 같은 샘플 원고,
《전주편애》 맛보기
경기여관에서 자고 삼백집에서 해장국을 먹은 배우 박노식은 구세약국에 들러 박카스를 마시면서 하루의 일과를 이야기한다. 점심은 일품향에서 간단한 만두로 때우고 왕궁다방에서 커피 한 잔을 했던 사연을 디지털독립영화관 곁 저 은행나무는 알고 있다.
하나 더, 경기여관은 이불 빨래를 여관 앞 피란민촌 아주머니들에게 맡긴다. 아웃소싱이다. 전주천에 드럼통을 펼치고 양잿물에 이불 빨래를 삶아주고 천변에 흰 광목천을 너는 풍경을 기억하는 어른들이 많다. 그 이면에는 손끝이 야문 피란민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잘 다린 이불을 시침하러 경기여관에 드나들던 아주머니들은 여배우나 가수들에게 양키시장에서 나온 화장품과 브래지어와 스타킹 등을 팔았다고 한다. 연세 드신 아주머니들이 경기여관에서 박노식을 비롯한 유명배우들을 노상 보았다는 증언과 구세약국 약사님의 말씀은 아귀가 딱 들어맞는다. 제국관에서 이어진 전주극장은 그 뒤 쇼핑몰로 바뀌고 또 바뀌면서 배우들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이 골목은 배우골목이다.
P. 58 ‘배우골목’ 가운데
전주에서 팝콘만 들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서울촌놈이다. 왜? 전주시네마와 CGV전주가 만나는 중간에는 문어발 스탠드 레스토랑이 있으니까. 영화의 거리 포장마차에서 문어발을 구워 ‘그들 각자의 영화관’을 선택해 스태프 몰래 애인의 핸드백에 챙기시라. 앙큼하게도 옆 사람에게 냄새풍기며 먹는 그 쫄깃하고 바삭한 맛을 모르고 페인트통 만한 팝콘만 드시는 분들은 서울 촌놈이다.
P. 60 ‘주전부리골목’ 가운데
객사는 이제 왕을 모신 곳이 아니라 젊은이를 위한 전주의 중정이다. 전주 사람들은 마땅한 장소가 생각나지 않으면 “객사 앞에서 보자, 잉”할 정도로 친근한 만남의 공간이다. 좌우 날개를 거느린 웅장한 객사 건물 마루에도 담 밖에도 젊은 데이트족들이 빼곡하다. 누가 전주 사람이고 외지 사람일까? 마루에 걸터앉아 셀카봉을 든 이는 외지인이고, 손전화를 들고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전주 사람이다.
P. 77 ‘전주의 위엄, 객사’ 가운데
전주에서는 적수도 스승도 없게 되자 이창호는 전주 출신 프로기사 전영선 7단에게 보내진다. ‘한 칸 뜀에 악수 없는 법’이란 격언대로였다. 때마침 일본에서 프로바둑기사 조치훈이 대활약을 하며 온나라가 떠들썩하던 시절이었다.
전영선을 거친 이창호는 바둑황제 조훈현 9단의 댁에서 숙식하며 배우는 ‘내제자’로 들어가 이론과 정석을 배운다. 설기원이라는 ‘귀’에서 시작해 전영선이라는 ‘변’을 거쳐 조훈현이라는 ‘중앙’으로 진입한, 말 그대로 ‘정석’이었다.
P. 103 ‘전주의 화점, 이창호 국수 생가’ 가운데
전주에서 이리까지 철도가 놓이고 전통도시는 강제로 새로운 근대를 경험하게 된다. 감영 자리에 도청이, 부영 자리에는 시청사가, 북문에 가까운 곳 옛날 전매청 자리에 전주역사驛舍가 들어선다. 남에서 북으로는 전통과 정치의 공간이었기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고 식민지배자들은 서세동진의 모양을 취하고 상권을 넓혀나간다. 시청 옆에는 식산은행이 자리잡고 우체국과 박다옥 등 고전주의적 서양건축물들이 들어선다. 그들에겐 ‘화양연화’시절이었지만 백성들에게는 ‘비정성시’의 화려한 불빛이었다.
P. 113 ‘그들만의 화양연화’ 가운데
여기 이야기 한 줄이 전해 내려온다. 조선시대 전주에 사는 한 선비가 있었다. 죽도록 과거 공부에 매달렸으나 선비는 낙방하고 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못난 선비는 객사에서 자결을 하고 죽어 그는 전라감영의 회화나무로 환생한다. 멀리서나마 객사를 바라보며 넋을 달래고 있다는 전설은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노량진이나 신림동에 회화나무가 있을지?
P. 118 ‘선화당 회화나무’ 가운데
수북이 쌓인 비빔밥용 놋쇠 그릇과 요리사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가히 공장이다. 물대신 기본으로 온육수가 나온 후, 밑반찬 12가지가 올라온다. 버섯과 마늘쫑으로 볶은 반찬, 무말랭이, 고추장아찌, 생채는 만든 지 얼마 안 되어 결이 살아있다. 당연히 그 곁에는 콩나물 맑은 국이 있다. 하이라이트는 작은 오모가리에 올라져오는 계란찜이다. 상위에 배달되면서 빵처럼 부푸는데 고소하기가 일품이어 ‘진격의 계란찜’이란 말도 있는데 비빔밥의 매운 맛을 덜게 해주려 올리는 것이란다.
P. 150 ‘비빔밥 삼국지’ 가운데
가맥이 ‘스트리트 비어’인지 아니면 ‘가게 맥주’, ‘가정용 맥주’의 준말인지는 아직 학설이 분분하다. 가게마다 ‘휴게실’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데 슈퍼 같기도 하고 음식점 같기도 하다. 그래서 전일슈퍼에는 전일갑오라는 간판이 하나 더 붙어있다. 양복쟁이부터 ‘끈 나시’ 입은 처녀들까지 노가리 안주처럼 다닥다닥 붙어 앉아 ‘열맥’하고 있다. 맥주의 성지답게 어른 앞에서는 소리 좀 죽이고 주위에 참한 여성이 있으면 음담패설은 삼가는 것이 이 동네 매너다.
P. 238 ‘유네스코 맥주 창의거리’ 가운데
이 동네 ‘슈퍼’에는 특기와 적성을 살려 사진 찍으러 오는 서울 촌놈, 아예 계란말이만 손을 대는 안주도둑, 수다 떨러 오는 사람들로 항상 만원이다. 벤츠 탄 아저씨도 빈티지체험을 위해서 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안주 종류도 그리 많지 않고 술은 셀프로 가져다 먹어야 하니 이건 주인을 위한 술집이다.
전주 술꾼들은 이쪽 슈퍼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기업형 가맥인 저쪽을 탐하지 않는다. 기회비용에 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영동슈퍼’는 튀김닭발이 기본안주고, 교실 수준으로 확장한 ‘임실슈퍼’ 특별 레시피는 수제비 띄운 명태대가리국이다. 집집마다 피나는 노력으로 안주를 개발 중인 것.
내는 사람은 한 턱 쏘는 느낌이 팍 드니 불역낙호아? 그렇다고 얻어먹는 사람도 부담을 덜 느끼는 착한 가격 때문에 전주에서 술 마시기를 엿보던 ‘엄벙한’ 전주 밖 술꾼들이 가끔 모험을 저지른다. 자기 사는 지역에 전주식 가맥집을 여는 것. 일단 적은 자본으로 시설비 많이 들지 않으니 쉽게 뛰어든다. 그러나 쉽게 실패한다. 왜? 장맛은 나름 창조할 수 있겠지만 그 전주 사람들이 술을 즐기는 마인드, 술 앞의 평등한 문화는 쉽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PP. 240~243 ‘유네스코 맥주 창의거리’ 가운데
전주에서는 함부로 원조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입맛 까다로운 양반들 앞에서 까불지 않겠다는 조용한 표시다. 뚝배기에 밥과 콩나물을 넣고 갖은 양념을 곁들여 뜨겁게 끓여 나오면 ‘삼백집 스타일’이고 뜨거운 국물에 말아서 내면 ‘남부시장 스타일’이다. 삼백집 이외에는 거의 남부시장 스타일로 하고 있다고 보면 맞다. 남문시장 안에 현대옥이라는 전설의 콩나물국밥 아주머니는 지금은 쉬신다.
P. 245 ‘해 뜰 때 장에서 먹는 국밥?’ 가운데
이리(현 익산)에서 주먹 자랑하지 말고, 전주에서 술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n+1차의 술을 마시고 주당이 마지막으로 들르는 성지가 바로 여기였다. 할머니가 괜히 욕쟁이가 되었을까? 이 동네는 왜정시대부터 유곽이 가까운 곳이었고 70년대만 해도 이 동네는 불야성이었다. 몇 차를 마신 지 모르는 술꾼, 좋은 끗발 오르기를 기다린 도박꾼, 핼쓱한 오입쟁이들이 새벽에 들르면 할머니는 ‘오살할 놈들’ 하고 욕을 퍼부었다. 나는 네가 지난 밤에 한 일을 모두 알고 있다는 말씀이렷다. 밤거리의 뒷골목을 누비고 다닌 맨발의 청춘들에 거리의 자식이라 욕을 해대는 것이다. 건달들은 할머니가 욕을 섞어 끓여주는 콩나물국밥에 모주 한잔을 곁들여서 전날 마신 술로 거북한 속을 풀면서 반성했을까? 욕쟁이 할머니에게 까인들 뭐 대수랴? 이것이 자잘한 일상이 되는데.
P. 246~247 ‘해 뜰 때 장에서 먹는 국밥?’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