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분류 시/에세이/자전적 에세이
도 서 명 누구를 위한 검사(檢事)인가
지 은 이 서영제
출 판 사 채륜서
정 가 29,000원
발 행 일 2015년 12월 10일
상세정보 600쪽, 신국판 (153m/m×225m/m), 높이(34mm)
I S B N 979-11-85401-10-2 03810
그에게 회색지대는 없었다
이 책은 대한민국 참여 정권 시절 서울지검장을 지냈던 서영제의 28년간 검사생활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스스로의 성격을 ‘좌충우돌, 돈키호테, 결벽증, 모난 성격, 독불장군, 수도승, 똥고집, 철딱서니 없이’ 등으로 묘사하였다. 여러 차례 정치적 외압과 위협을 받았음에도 그의 신념은 꺾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죄가 있으면 벌하고, 죄가 없으면 방면했다.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황야의 외로운 한 마리의 늑대가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한편으로는 통쾌하면서 한 편으로는 아슬아슬했던 서영제의 올곧은 판단을 읽어볼 수 있다. 서영제의 흔들림 없는 판단력은 서초동에 봄을 가져왔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검사생활을 돌아볼 때에 ‘부끄러웠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검사생활에 대한 반성문을 쓴다는 마음으로 이 파란만장하고, 화려하면서도, 외롭고, 위태위태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내려갔다. 그 옛날 조선시대의 사관들처럼 꼼꼼하게 기록된 이 반성문이 반면교사가 되길 바란다고, 서영제는 말하고 있다.
안방의 귀여움을 받는 애완견이 아니라
황야에서 부르짖는 늑대의 근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신문에 본인이 서울지검장에 내정됐다는 기사를 읽고, ‘이런 엉터리 기사가 다 있느냐’라고 생각했다. ‘검찰의 꽃’이라고 불리우는 서울지검장 자리에 그가 앉게 될 줄은 검찰 내부, 심지어 그 본인조차 예상치 못한 일이었던 것이다.
서영제의 서울지검장 인생은 그렇게 ‘예상치 못한’ 시작이었다. 이미 많은 국민들이 검찰에 대해 신뢰를 잃은 지 오래였던 때였다. ‘정치검찰’이라는 낙인과 그 악습은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더불어 참여정부의 시작이었다. 진보, 국민 참여라는 타이틀을 내건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은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나라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 속에서 서영제 변호사가 서울지검장으로 임명된 후 보여주고자 했던 모습은 간단했다. 정치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검찰의 의연한 모습이었다. 누구에게도 휘말리지 않고 객관적 사실 규명에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스스로 검찰의 돈키호테가 되기를 자청한 것이다. 그런 다짐은 서울지검장 자리가 만들어준 것이 아니었다. 초임 검사 때부터 20년간 그의 검사생활 동안 늘 갖고 있었던 평소 지론이었다.
‘하나도 안 봐주고 원칙대로 하니 하나도 어려울 게 없지’
이후 그를 향한 평가 중에 하나였다.
서초동의 봄이 이뤄졌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 정대철 대표의 뇌물수수 혐의가 포착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굿모닝시티 쇼핑몰 분양사업이었다. 서울시의 건축심의도 받지 않은 채 일반인들에게 분양을 시작하여 3,400억 원 이상의 분양대금을 거둬들인 것이다. 전체 규모 1조 원 공사에 피해자만 해도 3,200여 명에 이르는 대형사건이었다. 이때 서영제는 정공법을 택했다. ‘수사를 진행하라’. 망설임이 없었다.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지 ‘사람’을 수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작 그의 결정에 놀란 것은 명령을 받은 당시 부장검사였다.
본격적으로 수사가 시작되었고 이내 당시 국무총리실의 비서실장과, 대한주택공사 사장의 혐의도 드러났다. 참여 정권이 출범한 지 서너 달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옳은 일을 한 것이기에 서영제에게 직접적인 외압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밑에 있는 검사, 부장들에게 질책이 쏟아졌다. 후에나 들은 이야기였다.
곧 정 대표의 구속이 집행되었지만 정 대표는 출두를 거부했다. 돈을 받은 건 인정하지만 어디까지나 정치자금이라는 것이다. 정 대표의 수사거부로 수사는 진척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서영제는 3,000여 명에 이르는 분양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이유로 정 대표를 압박하였다. 공개소환장을 보낸 것이다. 국민이 정 대표를 소환한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수사 과정에 있어서도 평탄하지 않았지만 결국 정 대표는 1심에서 징역 6년에 추징금 4억 원을 선고 받았다. 검찰과 정치권의 관계가 악화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검찰청사 주변에는 환호의 분위기로 뒤덮였다. 검찰이 정치권의 외압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사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날을 어느 인터넷 신문에서는 ‘여당 대표를 구속하였으니 오늘이 검찰 독립기념일이다’라고 보도하였다. 신상규 3차장은 ‘서초동의 봄이 왔다’라고도 표현했다.
남은 것은 낡은 점퍼 뿐이었다
이 책은 ‘검찰의 꽃’이라고 불리우는 서울지검장 자리에까지 올라갔던 서영제의 28년간 검사생활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기회를 잡아 성공한 야망가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 책에서는 부와 명예를 위한 교묘하고 교활한 술수는 찾아볼 수 없다. 서영제는 뜬금없이 찾아온 서울지검장이라는 자리를 통해서 무언가를 얻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이른바 ‘정치댄스’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가 지키고자 하는 신념은 단지 ‘죄가 있으면 벌하고 없으면 면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기 그지없는 그의 신념을 지키는 것은 안타깝게도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그는 신념을 위해 때로는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유혹, 위협과 싸웠다. 후에 검사생활 동안에도 남은 것은 야근 복으로 받은 낡은 점퍼뿐이었다.
이 책에서는 그가 어떤 위협을 받았으며 그것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알 수 있다. 여지껏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들’만의 세상을 누구보다 거침없이 까발려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검사생활을 돌아볼 때에 ‘부끄러웠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검사생활에 대한 반성문을 쓴다는 마음으로 이 파란만장하고, 화려하면서도, 외롭고, 위태위태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내려갔다. 그 옛날 조선시대의 사관들처럼 꼼꼼하게 기록된 이 이야기들이 독자에게 반면 교과서가 되길 바란다고, 서영제는 말하고 있다.
리인터내셔널 법률사무소의 고문변호사이다.
1974년 제16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마지막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초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등을 하면서 28년간의 검사생활을 하였다.
2009년 충남대학교 초대 법학대학원 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세종대학교 학교법인 대양학원의 감사로 있다.
주요저서로는 『미국검찰의 실체분석』, 『보험범죄에 관한 연구』, 『주요 조직폭력 마약수사 사례집』, 『미국 특별검사제도의 과거와 미래』, 『형사 보상에 관한 연구』, 『미국 특별검사법의 헌법적 한계와 그 실효성에 관한 연구』가 있다.
차례
왜 처절하게 이 책을 써야 했나?
어느 취재 기자의 주옥같은 추천사
1장 예상치 못한 서울지검장으로 파격적인 발탁
2장 정권교체기의 파란만장한 서울지검장 시절
3장 소신으로 미화된 좌충우돌의 초임검사 시절
4장 좌절의 쓴 잔이 도약의 초석으로
5장 서투른 돌칼 춤으로 산화해버린 거악과의 전쟁
6장 검사의 궁극적 사명을 깨닫게 한 일선검사장 시절
7장 검사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8장 검찰은 결국 무엇을 해야 하는가?
9장 특별검사 논란은 왜 계속되고 있는가?
10장 자연인으로서 나는 누구인가?
부끄러운 수사비화를 마치면서
내가 서울지검장에 임명되고 나서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정치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검찰의 의연한 모습이었다. 안방에서 귀여움을 받는 애완견이 아니라 황야에서 부르짖는 늑대의 근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로서는 누구에게도 인사에 빚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주변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철저한 수사로 객관적인 사실 규명에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하던 터였다. 그야말로 서울지검장이 내 검찰 경력에서 마지막 보직이라는 결연한 마음가짐을 가졌다.
p. 42
검찰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그 정치철학에 동조해서 범죄여부 수사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오로지 법규정에 위반 했는지만을 수사의 잣대로 삼아야 한다. 검찰은 정치에 참여해서도, 개입해서도 안 된다. 법이라는 잣대만이 검찰 수사를 움직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여야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페어플레이를 할 수 있게 하는 룰이다. 같은 범죄라도 여권은 단속하지 않고 야권만 단속한다면 이것은 페어플레이가 될 수 없다. 이래서 검찰총장 이하 검사는 수도승과 같은 자세로 세속에서 떠나야 한다. 세칭 마당발 검사가 발을 붙여서는 안 되는 이유다.
p. 105
마침 집무실에서 입고 있던 낡아빠진 점퍼에 눈길이 미쳤다. 검찰에서 단체로 나누어준 야근 복으로, 무려 15년 동안이나 입은 것이었다. 물이 빠지고 실밥이 터져나가 초라해진 모습이 마치 내 신세를 대변해주는 것만 같았다.
낡은 점퍼 속 이야기를 풀어내니 퇴임사는 자연스럽게 쓸 수 있었다.
p. 437
한동안은 모든 것이 서운했다.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벌써 그러한 기억도 멀찌감치 잊혀져 버렸다. 하지만 우리 검찰 역사의 어느 한 페이지에는 내 이름이 새겨진 반지가 먼지에 덮인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서서히 잊혀져가기는 하더라도 내 인생의 중요한 기록임에 틀림없다.
p. 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