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도서분류 미학/인문교양/교양건축
도 서 명 인문학, 한옥에 살다
지 은 이 이상현
출 판 사 채륜서
정 가 14,800원
발 행 일 2013년 11월 20일
상세정보 반양장, 256쪽, 신국판 변형(153m/m×210m/m)
I S B N 979-11-85401-00-3 03600
한옥의 아름다움, 우린 정말 공감하고 있을까?
한옥이 아름답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인 아름다움을 물으면 명쾌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 건 무슨 이유일까? 이 책은 예술을 보는 우리의 눈이 ‘서양 고전미학’에 익숙하다는 사실과 태생적으로 서양건축물과 다른 한옥의 ‘문화적 특성’에서 이유를 찾고 있다.
한옥을 보는 데 굳이 서양미학을 가져오는 것은, 우리가 미를 보는 보편적인 기준을 통해 한옥의 미를 보아야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렇게 우리가 잘 아는 서양미학을 살펴보며 그곳에서 한옥이 차지하는 위치를 보려 한다. 여기에 더하여 한옥의 인문학적인 가치, 그러니까 미적 태도를 서양과 달리할 수밖에 없게 한, 한옥에 반영된 문화 특성과 한옥의 영향을 받은 전통예술을 함께 살핌이 매우 흥미롭다.
딱딱할 수도 있는 인문학을 다루고 있지만, 소설을 썼던 저자의 이력으로 매우 재미나게 읽힌다. 한 편의 이야기를 듣듯 책을 읽고 나면 한옥이 왜 아름다운 건축물인지, 그것도 얼마나 현대적인 감각을 품고 있는지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인문학,한옥에 살다》가 우리 미학을 세계 미학사에서 새로운 위치에 올라서게 하는 시금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옥에게 아름다움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일까?
우리는 한옥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을 뿐이다
한옥은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힌다. 하지만 막상 한옥의 ‘미’에 대해 물으면 대답이 두루뭉술해지고, 심지어 서양 건축물과 나란히 볼 땐 굳게 믿은 아름다움에 혼란이 오기도 한다. 한옥의 ‘아름다움’이란 단지 민족적 자부심이 빚어낸 착각일까?
이런 태도는 평소 예술을 보는 우리 눈이 ‘서양 고전미학’에 익숙한 탓이다. 서양미학이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평소 물건을 고를 때 서양의 미적 가치를 들이미는 우리는 알고 보면 서양미학에 통달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전미학의 잣대로는 한옥의 ‘진짜’ 아름다움을 보기 어렵다. 서양과 다른 우리의 독특한 건축 개념 때문이다. 우리에게 건축은 단순한 건물의 의미가 아니어서 대상이 가진 비례와 색(빛)을 따지는 서양 고전미학의 기준을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한옥의 아름다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한옥은 예로부터 내려온 전통 건축물이지만,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고 오히려 현대적인 감각을 품고 있다. 현대미학에서의 아름다움이 대상 자체에서 대상을 보는 사람의 주관으로 넘어온 만큼, 한옥을 읽는 데는 서양 고전미학보다는 현대미학이 더 적합하다.하지만 이것만으로도 한옥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부족하고 한옥이 가진 특성을 고려하면서 다른 나라와 차별된 미적 태도로 보아야 비로소 한옥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한옥의 참다운 맛을 느낄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아니, 사실 본능적으로 한옥의 공간을 서양과 다르게 봐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구체적인 방법을 모른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그래서 고전미학과 현대미학의 관점을 한옥에 적용하면서 한옥을 탄생시킨 문화적 특성으로 말미암은 미적 태도까지 짚어 줄 수 있는 도우미가 필요한데, 이 책이 바로 그 역할을 해 준다. 우리가 한옥에 가졌던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고 다른 나라와 차별된 우리의 미적 태도를 익혀 한옥의 참맛을 음미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옥을 보는 새로운 눈, 숭고
한옥은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하기에 무언가 부족하다. 보통 사람이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고전미학에서의 기준, 대칭이 잘 맞고 색이 선명하고 어여쁜 것이 아니던가? 이런 미적 기준으로 한옥의 아름다움을 평가하기란 참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한옥에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닌 ‘숭고’가 있다고 말한다. 숭고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어떤 대상에게 받은 충격’으로 대상 앞에 스스로 겸손해지면서 인격적으로 고양되는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이라 한다.
그럼 한옥에 숭고가 어떻게 숨어 있을까? 한옥을 지을 땐 서양처럼 정확하게 길이를 재고 비율을 따지는 게 아니라 ‘대충’ 짓는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한옥에는 절대적인 수치나 비례가 없다. 성의 없이 짓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건물 하나의 완결미나 비례를 따지는 게 아니라 집, 우리 한옥에만 있는 마당 그리고 자연까지 하나로 보아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는 그 지점에 맞추어 짓는 것이다.자연의 속성인 형상을 인공적으로 해치지 않고 보존한다는 의미에서 한옥은 자연 자체를 담은 건물이 된다. 또한, 완성된 건물을 다시 자연의 흐름으로 되돌린다는 의미에서 한옥은 자연이 능동적으로 개입할 길을 넓게 열어 놓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로써 한옥의 숭고미가 확보된다.
마당을 포함하여 한옥을 이루는 모든 것이 한자리에 모여 흥을 이루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건물과 자연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곳, 그곳이 우리의 전통 집 한옥이다. 이 책은 이렇게 숭고를 말하며 우리가 한옥을 새로이 읽을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생활과 예술의 경계에서 탄생한 한옥
한옥의 미는 관념에 그치는 아름다움이 아니다
사실 한옥의 숭고함을 아무리 역설해도 구체적으로 따지기 전에는 얼른 와 닿지 않는다. 숭고함은 상상력을 벗어난 압도적 대상을 마주 대했을 때 느끼게 되는데, 우리에게는 한옥이 매우 익숙하다. 그래서 새삼스레 한옥에서 깨달음을 얻거나 숭고함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옥이 마치 동양적인 가치를 의도적으로 부여하여 지은 건축물인 것처럼 해석하곤 한다. 한옥이 동양철학을 품은 것은 맞지만, 결코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전통 한옥은 마당과 구들, 대청 등 생활의 편리함을 위해 발전하여 모양새를 갖추었다.사람의 생활로부터 자연스레 태어났기에, 사람이 살기에 편한 집이 되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예술을 대하는 우리의 미적 태도다.우리의 예술은 생활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기교적이지 않고, 전문가 같지 않은 전문가가 만든 것이 예술이 된다. 즉 대중에 의해서 나오는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생활 속에서의 숙련이 흥으로, 대상의 상과 소통하면서 만든 형이 바로 우리의 예술이다. 한옥은 바로 생활에서 예술로 나아가는 그 경계선에서 태어났기에 지나침이 없다.
반면 현대 예술에는 생활이 빠져 있다. 생활을 떠난 예술은 ‘추상적인 관념’에 그친다. 현실 동떨어져 해석이 필요한 예술이 된 것이다. 이런 관념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예술품과 한옥은 달리 읽을 수밖에 없다. 한옥의 미를 올바르게 읽기 위해 서양의 고전미학도,현대미학도 아닌 우리만의 미학을 통해 봐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예술이라는 것은 활동이고 생활에서 나오는 흥을 받아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술은 결과에 생뚱맞은 이름을 지어 붙이는 관념 놀이가 아니라 실제로 그 결과에 참여하여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한옥은 관념에 그치는 아름다움이 아닌 생활과 밀접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한옥에는 인문학이 산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으로부터 태어나 사람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예술, 세계에서 우리의 한옥이 선두에 있지 않을까?
이상현
서울시립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에 들어가면서 집과 인연을 맺었다.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고 회사를 나왔지만,용평리조트 사사(社史) 집필에 참여하면서부터 한옥에 구체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현재는 한옥연구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한옥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한옥 목수 일까지 배웠다. 글을 쓰는 사람을 작가(作家)라고 하는데, 한자를 그대로 풀면 집을 짓는 이가 바로 작가다. 글을 쓰는 사람은 마음의 집을 짓고, 나무를 만지는 사람은 몸의 집을 짓는다. 그는 작가로서 사람이 몸을 담는 집과 마음을 담는 집을 함께 짓고 있다.
한옥학의 개론서 구실을 하는 《즐거운 한옥읽기 즐거운 한옥짓기》를 2007년 처음 출간한 이후, 어린이를 위한 한옥 책 《우리 한옥 고고씽》을 출간했다. 또한 한옥을 공부하는 틈틈이 한옥과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과 《한옥과 함께하는 세상 여행》을 출간하며 대중이 한옥에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했다. 현재 개인연구소인 ‘한옥연구소’를 운영하고 있고, 누리집에도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한옥연구소: http://blog.naver.com/eoklsh
다이아몬드가 의미를 가지려면, 잘 깎여져 비례를 갖고 그것이 전체적으로 비례적인 완결성을 가져야 한다는 외적인 껍데기보다는,물질이 가지는 속성이 중요합니다. 바로 그것이 다이아몬드여야 하는 것이죠. 플라톤이 말하는 좋음의 이데아, 미의 이데아는 결국 외적인 무엇이 아니라 사물의 진정한 가치로서의 이데아를 의미합니다. 비례는 그것을 판별하는 기준일 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한옥의 미적 가치는 충분히 플라톤이 추구하던 그 지점에 가 있습니다. 형(形)을 중시하는 서양의 태도와 질(質)을 중시하는 우리의 태도가 이곳에서 접점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P. 70
한옥에는 자연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타납니다. 자연이 신이라는 입장에서는, 집을 짓는 일이 적극적으로 신을 형상화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연의 속성인 형상을 우리가 인공을 가해 무화시키지 않고 보존한다는 의미에서 한옥은 자연 자체를 담은 건물이 되는 것입니다. 기둥과 대들보 같은 건물 부재도 그렇지만, 완성된 건물 역시 다시 자연의 흐름으로 되돌린다는 의미에서 한옥은 자연이 능동적으로 개입할 길을 넓게 열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P. 213
현대예술에는 생활이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술이 굉장히 자폐적입니다. 이는 예술가와 비평가와 비싼 가격에 그림을 사는 극히 소수의 소비자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의 도공은 자신이 만든 것이 천하의 명기名器인 줄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만약에 도공이 자기가 명기를 만든다고 생각했다면 그런 그릇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나요? 역설적이지만, 예술이 생활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을 이만큼 정확히 짚은 말도 드문 것 같습니다. 생활 속에서의 숙련이 흥으로, 대상의 상과 소통하면서 만든 형이 바로 예술이 되는 것입니다.
P. 250
한옥 미학의 길에 들어서며
Chapter 01. 아름다움의 역사에서, 한옥의 자리는 어디쯤일까?
당신은 당신의 아름다움을 확신할 수 있나요?
(밉지만 나쁘지 않은 내 얼굴 / 솔직히 말해보세요! 서양 건축이 훨씬 아름답지 않나요?)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예수가 아름답다고 확신하는 까닭은?
(누가 감히 예수를 추하다고 하는가? / 내가 가짜일 수 있을까? / 별빛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 토마스가 사랑한 아름다움)
전통미, 정말 고리타분한 걸까?
(비례가 엉망인 우리 건축 /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 / 불균형을 통해 균형으로 가다 / 곤란에 빠진 미술 선생님)
한옥은 왜 직사광선을 싫어할까?
(비너스를 빚은 서양 건축 / 우리가 바탕색을 사랑한 까닭 / 한옥을 사랑한 세잔 / 비명이 된 베이컨의 그림)
한옥, 플라톤과 통하다
건축가가 예술가라고? 도대체 건축이 언제부터 예술이 되었단 말이지?
(액션페인팅과 만대루 / 건축, 신분이 상승하다)
Chapter 02. 아름답지 않은 한옥, 그 불편한 진실
정말 독특한 역사 이야기
(조선 민중의 힘 / 한옥이 아닌 서양 집을 닮은 중국의 사합원 / 그리스보다 한발 앞서다)
텅 빈 건축
(여성의 상징 코라, 마당을 닮다 / 매끈한 공간이 된 마당)
우리의 건축 본능, 마당
(마당, 선험적 건축 공간이 되다 / 20세기, 이제 마당을 이해하다)
니체, 서양의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다
(공간을 알다 / 니체, 디오니소스 공간을 만들다 / 하이데거, 구들을 꿈꾸다)
뭐 이런 건축이 다 있어!
(흐름의 건축, 새로운 미학 / 우리는 왜 아파트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부처도 감탄한 민중의 지혜
(우리 건축의 기본, 살림집 한옥 / 마당에서 만난 부처와 공자)
이 못난 한옥을 어이할꼬!
Chapter 03. 숭고, 한옥을 보는 새로운 눈
막사발 한 번만 만져보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
(목숨을 걸고 와서 밥그릇을 훔치다니! / 오브제로 돌아간 막사발)
한옥을 읽는 새로운 눈, 숭고
(칸트, 밤하늘의 별을 보다 / 하이데거, 건축을 통해 세계를 열다)
대충, 우리가 자연에 참여하는 특별한 재주
(밥그릇이 찻잔이 된 사연 / 구수한 큰 맛 / 초월을 꿈꾼 이들 / ‘대충’의 미)
예술을 품은 한옥
(우리 문화의 변곡점, 고려 말 조선 초 / 한국예술의 중심, 한옥 / 추사와 맞닿은 한옥의 예술성)
칸트, 한옥을 감상하다
스피노자, 한옥의 숭고를 말하다
(한옥에 개입한 자연 / 집의 자연 되기)
한옥에서 만난 하이데거
시뮬라크르를 통해 도달한 숭고
(바벨탑으로 나눠진 언어는 고향을 향한다 / 한옥은 차이의 합이다 / 시뮬라크르를 통해 숭고에 이르는 길, 형과 상 / 세잔, 서양을 넘어서다 / 우리 생활과 예술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돈다 / 차이와 반복 / 실천적 공간, 집)
Chapter 04. 한옥에는 숭고미가 없다
풍경화 속에 있는 사람은 풍경을 보지 않는다
한옥, 칸트와 결별하다
다다에서 초현실주의로 넘어가는 변곡점에 서다
끊임없는 생성 속으로
|지식 넓히기|
한옥에는 정말 비례가 없을까?
감성과 지성의 차이
하이데거철학에서의 존재와 존재자
주거생활이 문화에 미친 또 다른 예, 대우법
살림집에서 공포를 대체한 익공
리듬과 박자, 그리고 리토르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