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분류 역사/문화/한국사/역사인물
도 서 명 신영복 평전
부 제 명 시대의 양심
지 은 이 김삼웅
출 판 사 채륜
정 가 14,000원
발 행 일 2018년 1월 15일
상세정보 반양장, 302쪽, 신국판(152mm×225mm), 높이 16mm
I S B N 979-11-86096-67-3 03910
시대의 양심, 신영복 선생의 2주기를 추모하며
그를 다시 만나는 책
한 시대를 의롭게 살다간 수많은 역사 인물에 숨결을 불어넣은 김삼웅. 그가 이번엔 신영복의 삶을 되돌아본다. 출생부터 서거까지 신영복이 세상에 남긴 작은 흔적까지 놓치지 않고 살핌은 물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평론을 덧붙이고 있다.
많은 사람이 신영복을 ‘이 시대의 의인’ ‘진짜 어른’이라고 말한다. 억울한 20여 년의 옥살이에도 분노 대신 절제와 성찰로 달관한 인격을 보여주었으며, 관념에 머물지 않는 지혜와 따스한 시선으로 ‘가난해진 가슴’에 훈기를 불어넣었다. 이태 전 그는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났지만 세상에 남긴 향기는 아직도 잔잔히 남아 마음을 울린다.
시대의 양심이자 정직한 의인 신영복. 그를 아직 마음에서 보내지 못한 많은 분들에게 이 책이 또 다른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이 책의 첫 독자 편집자가 남기는 이야기
1. 시대의 양심, 신영복 선생의 2주기를 추모하며
신영복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나고 벌써 2주기를 앞두고 있다.
신영복 선생을 보내던 그날은 영하의 기온에 눈발까지 날리는 차가운 날씨였다. 하지만 추모객들은 추위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영결식도 한 대학의 학교장에 불과했으나 어느 국장이나 사회장에 못지않은 뜨거운 흠모와 안타까움이 절절히 배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신영복을 정신적인 멘토, 시대의 스승으로 여긴다. 세찬 풍파에도 늘 양심을 지켰고 정직했던 어른이기 때문이다. 억울한 누명으로 파릇한 청년 시절을 온전히 감옥에서 보냈지만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절제하고 성찰하여 높은 생각을 다듬어냈다. 그 사상을 풀어낸 많은 저서가 있지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특히나 반드시 사서 봐야 할 명저로 꼽힌다.
2. 책으로 다시 만나는 신영복 선생
이 책은 이런 신영복 선생의 출생부터 서거까지 일대기를 적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전기는 아니다. 인물평전 전문가 김삼웅 선생의 저서이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의롭게 살았지만, 우리 기억에서 아스라이 멀어진 수많은 역사인물의 평전을 집필해온 저자는, 이번에는 많은 현대인의 정신적 멘토, 신영복 선생의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저자는 ‘모범장서가’ 상을 수상할 정도로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다. 집 안을 가득 채운 책들은 평전 집필의 원천이다. 저자는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수십 시간을 연구하여 한 권의 인물평전을 집필해낸다. 특히나 이번 “신영복 평전”은 오랜 시간 공들여 집필하였다고 한다. 이는 저자가 “서울신문” 주필로 취임하던 때, 신문 제호를 “대한매일”로 되돌리며 신영복에게 글씨를 받았던 작은 인연도 인연이지만, 지식인임에도 고고하지 않고 늘 유연하게 사고하며 인간적인 면을 잃지 않았던 신영복에 깊이 감명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이 평전은 성격상 사실에 기반한 글이므로 격정적이고 손에 땀을 쥐는 전개는 없다. 하지만 읽으면서 크게 불편한 부분도 없다. 그저 담담하게 신영복의 생애를 따라가며 저자의 생각을 덧붙일 따름이다. 혹자는 너무 평이한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을 통해 신영복의 생애를 되돌아보고, 탁월한 사상과 주옥같은 문장을 한 권으로 모아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은 저자의 연륜이 담긴 한마디가 더해지면 이 책 자체가 삶의 지침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3.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을 보듬는 사람
책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오랫동안 신영복을 지켜보았다는 한 학자는 “유치할 줄 아는 분”이라고 평가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생각을 다듬어온 사람이고,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을 보듬어온 사람이다. 그는 시대의 스승이고 고고한 선비임이 분명하지만 또한 우리 곁에서 아주 유치한 모습으로 함께 놀 줄 아는 사람”이 신영복이라는 것이다.
정말 좋은 글은 ‘쉬운 언어에 값진 가치를 담은’ 글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알면 너도 알겠지’라는 왜곡된 인식 때문이든 ‘우월함을 드러내고 싶은’ 본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식의 저주’에 걸린 전문가를 많이 보아왔다. 비단 전문가뿐만이 아니다 알면서도 겸손하기란 쉽지 않으니, 우리 모두는 얕게나마 이 저주에 걸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신영복의 말과 글은 달랐다. 일상의 지혜들을 쉽고 간결한 문장과 아포리즘을 당대인들에게 전파한 사상가였다.
4. 나무가 더불어 숲이 되는 길, 처음을 지키는 그 마음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신영복 선생의 말처럼 우리는 ‘자연에 뿌리를 내리고 옆의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그런 일반적인 민초에 가까운’ 나무다. 이런 나무들이 모이고 또 모여 더불어 숲을 이루면, 오만한 강자에 맞설 수 있다. 지난겨울 광화문으로부터 시작된 우리 나무들의 힘은 정말 엄청난 것이었는데, 삶이 팍팍한 탓인지 나조차도 내 옆의 나무와 숲을 이루는 법을 잊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책으로나마 만난 신영복 선생이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내 어깨를 다독거리며 힘내라는 말을 건네는 것 같아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 이 책의 첫 독자로서 생각하는 바가 많다. 나는 과연 그런 정직하고 양심적인 어른이 될 수 있을지, 누군가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지, 머문 자리에 은은한 향기를 남기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나를 성찰하게 된다.
작심삼일. 곧 흐트러질 수도 있는 다짐이지만 마음속으로 한 번 더 되뇌어 본다.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고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김삼웅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현재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4년여 동안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제주 4·3사건 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역사·언론 바로잡기와 민주화·통일운동에 큰 관심을 두고,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의 평전 등 이 분야의 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주요 저서로는 『곡필로 본 해방50년』, 『한국필화사』, 『금서』, 『위서』, 『백범 김구 평전』,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년』, 『단재 신채호 평전』, 『만해 한용운 평전』, 『안중근 평전』, 『이회영 평전』, 『노무현 평전』, 『김대중 평전』, 『안창호 평전』, 『빨치산대장 홍범도 평전』, 『김근태 평전』, 『독부 이승만 평전』,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 『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 『몽양 여운형 평전』, 『우사 김규식 평전』, 『위당 정인보 평전』, 『김영삼 평전』, 『보재 이상설 평전』, 『의암 손병희 평전』, 『조소앙 평전』, 『백암 박은식 평전』 등이 있다. 최근의 저서로는 『박정희 평전』이 있다.
여는 말_향나무처럼 살아간 야인
1장 우수한 모범생으로 자라다
2장 학부와 대학원 재학 시절
3장 대학교수 시절에도 간직한 맑은 심성
4장 정체도 모른 채 엮인 통일혁명당사건
5장 기나긴 감옥살이 시작
6장 기약 없는 대전교도소의 시간
7장 전주교도소 이감, 움트는 생명운동
8장 20년 만의 출감
9장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10장 중국·일본 소설과 루쉰전 번역
11장 넓어진 활동영역
12장 중국역대시가선집 4권 공역
13장 역사 현장에서 띄운 엽서
14장 동양고전 강의를 책으로
15장 노년에 남긴 향기와 울림
16장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17장 76세로 운명, 성공회대학장으로 장례
닫는 말_한 송이 눈꽃같은 순결한 삶
주
작은 호떡집에서 10원에 3개 주는 ‘문화빵’으로 만찬을 하고, 아이들이 10원씩을 모으고 신영복이 40원을 더하여 매달 100원씩 우편저금을 하여 꼬마 학생이 관리하도록 했다. 중학교 진학이 어려운 아이들의 사회진출에 작은 도움이라도 주기 위한 저축이었다.
꼬마들이 다니는 학교 이름을 따서 청구회라고 모임의 이름과 노래도 지었다.
- P. 49
한국의 독재자들은 일제의 악습 중에서 못된 것만 골라 배웠다. 글(책)로서 시작된 문명사회에서 글을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하도록 막는 반문명적 처사를 서슴지 않았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글을 쓰지 못하게 막는다고 하여 절필하면 진정한 지식인이랄 수 없다. 검열자들도 치밀하지만 수인들의 지혜와 글 솜씨는 이들을 뛰어넘는다. 아무리 검열자들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봐도 용케 글을 밖으로 빼내거나 평범한 듯한 속에 비범한 의미를 담는다. 신영복의 ‘옥중서한’도 이에 속한다.
- P. 77
신영복이 긴 옥살이 중에서 가장 괴로웠던 일은 동병상련격인 일반 수인들로부터 배척당하는 때였을 것이다. 그는 일반 먹물들이 사용하는 ‘현란한 언어’ 대신에 그들과 어울려서 그들이 쓰는 말을 쓰고 같이 일을 하면서 어울렸다. 출감 후 그의 소박한 언어구사나 소탈한 성품 등 ‘변방의식’은 이렇게 형성되었다.
- P. 103
신영복은 ‘더불어 숲’의 일원이고자 했다. 결코 그는 20년 감옥 바위의 ‘낙락장송’이거나, 군사독재와 부패권력에서 한 발 비켜 선 ‘독야청정’이나 ‘오상고절’이기를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민초들과 어울리고 부딪기고 함께 숨 쉬면서 동무가 되었다. 술집에서 어울리면 〈냇물아 흘러흘러〉를 부르고 강연 요청이 있으면 청탁을 가리지 않았다.
- P. 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