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분류 국악 / 한국역사인물
총 서 명 경기관광공사 지역문화한마당 02
도 서 명 민족음악 수호영웅, 지영희
지 은 이 지수복, 이보형, 이진원, 노재명, 오민아
출 판 사 채륜
정 가 19,000원
발 행 일 2014년 10월 31일
상세정보 반양장, 240쪽, 크라운판변형(173mm×225mm), 책등 높이 15mm
I S B N 979-11-86096-02-4 93670
▶ 이 책은 평택호 예술관 내 〈지영희 특별전〉에서도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전시 기간: 2014.10.31~2015.01.31)
천부적인 예인이자 한국음악의 독립운동가, 지영희
천재적인 음악 재능과 지도력 그리고 불타는 예술혼을 가진 전무후무한 예인인 지영희. 그가 우리 음악사에 남긴 업적이 무수함에도 과거 약했던 국력과 국악에 대한 무관심 탓에 저평가된 적도 있었다. 이 책은 그를 다시 알기 위해 기획된 〈지영희 특별전〉을 기념하며 출간되었다.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예인으로서의 삶을 엿볼 수 있으며, 그가 남긴 위대한 업적과 활동 기록 사진, 생전에 사용하던 유품까지 한데 모아 엮어 그를 알고자 하는, 혹은 우리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지영희, 그는 누구인가?
〈지영희 특별전〉을 기념하며 만나는 그의 삶과 업적
어떤 사람에 대해 갖는 기억이나 이미지는 사람마다 제각각일 수 있다. 아니, 제각각인 것이 맞다. 사람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며 사는 것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공통된 기억 하나쯤은 있기 마련인데, 지영희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국악에 대한 열정’으로 모아지는 것 같다.
그는 우리 음악을 사랑하고 아꼈으며, 그것을 지키고자 무수히 노력하였다. 그가 천재적 음악 재능을 가진 것은 아마 우리 음악을 지키라는 하늘의 계시였는지도 모르겠다. 해금과 피리의 명인이자 양금, 해금, 태평소 등의 악기를 다루는 데도 능했던 그는 작곡가로도 큰 능력을 발휘하여 가히 천재라고 부를 만했다. 게다가 오늘날은 매우 익숙하게 보이는 국악관현악단의 시초가 지영희였고,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하여 현재 그의 제자들 중 국악계의 중심축을 이루는 인물도 여럿이니, 우리나라 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에는 이런 지영희의 삶과 업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모여 만들어진 만큼 수많은 자료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온기가 손끝에 느껴지는 것만 같다. 세인의 무관심으로 인해, 약했던 국력 탓에 그 진가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한때는 억울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고국을 떠나서도 식지 않았던 그의 국악 사랑에 마음이 저릿해진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국악에 있어서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혼자의 몸으로 해낸 그의 위대함을 재조명하고 숨겨진 이야기까지 들음으로써, 저평가된 ‘민족음악의 독립운동가’ 지영희를 다시금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수복(유족 대표, 명인)
이보형(한국고음반연구회장)
이진원(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장)
오민아(경기관광공사 스토리텔링 작가)
지영희(池瑛熙) 소개
본명은 지천만(池千萬)으로 1909년 9월, 경기도 평택에서 경기 세습무 지용득 명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항련에게 호적을, 정태신에게 양금을, 지용구에게 해금을, 양경원에게 피리를, 김계선에게 대금풍류를, 방용현에게 대금산조와 풍류를, 최군선에게 농악을, 오덕환에게 무용 장고를, 박춘재에게 경기소리와 서도소리를, 신쾌동에게 거문고산조를, 김상기에게 거문고풍류를 배웠다. 이처럼 여러 무악 명인들에게 장단 등을 배웠으며 가야금과 아쟁은 자득했고 해금산조, 피리산조 연주자로 유명하다.
1937년 조선음악연구소에 입소하여 악사가 된 이후, 1938년에는 한성준무용단(韓成俊舞踊團)의 반주악사로 활약하였으며, 1946년에는 서울중앙방송국 전속국악사가 되었다.
1960년에는 국악예술학교 교사로서 유망한 신인들을 많이 길러냈다.
1962년 한국대표로 참석하여 프랑스 파리 세계민속예술대제전에서 우리 음악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것은 매스컴을 통해 널리 소개되었다.
1963년 한국국악예술학교 부설 학생국악관현악단을 조직하였으며, 1965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 지휘자 취임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1967년에는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1973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 기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76년 미국 하와이에 한국민속예술원을 창설하고 활동하였으나 1980년 작고하여 우리 국악계에 평생을 헌신한 고귀한 삶을 마감하였다.
인사말, 하나_공재광(평택시장)
인사말, 둘_황준기(경기관광공사장)
인사말, 셋_지수복(유족 대표, 명인)
인사말, 넷_송종애(내기초등학교장)
들어가는 이야기 | 한국음악 독립운동가 지영희 명인 자료전시회의 의미_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장)
01 궤적을 되짚다
지영희 선생이 전통음악교육에 끼친 업적_이보형(한국고음반연구회장)
해금산조의 새로운 탄생, 지영희류 해금산조_이진원(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해금·피리·태평소·아쟁·장고 명인 지영희_노재명
02 흔적을 더듬다
지영희 명인 유가족 제공 유품 자료
지영희 명인 주요 활동 기록 사진_노재명
지영희 명인 활동 연보_노재명
지영희 명인 음반 목록_노재명
지영희 명인 자료전시회 기념 제작 CD 음반 소개
나가는 이야기 | 악성 베토벤, 반 고흐 그리고 우리에겐 지영희_오민아(경기관광공사 스토리텔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