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명: 혜경궁 홍씨와 왕실 사람들 -문학의 창으로 본 조선의 궁중문화 2
지은이: 정은임
분 야: 한국고전문학
발행일: 2010년 03월 30일
ISBN: 978-89-93799-16-3 04810
신국판(152mm×223mm), 반양장, 303면, 15,800원
내가 글자 한자 한자를 써 내려갈 때마다 놀라 심장이 떨리고 눈물을 흘리며 이 글을 썼으니 세상에 내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원통하고 원통하도다
―가순궁(순조 생모)이 혜경궁 홍씨에게 한중록의 집필을 청하자....
이 책은 이승의 삶 궁궐과 저승의 안식처 왕릉인 건축물을 통해 조선의 궁중문화를 엿보았던 “문학의 창으로 본 조선의 궁중문화 1”(삶과 죽음의 공간)에 이어서 조선 최고의 비극적 역사를 지닌 영정조 시대의 산증인인 혜경궁 홍씨를 다룬 문학의 창으로 본 조선의 궁중문화의 두 번째 얘기 “혜경궁 홍씨와 왕실 사람들”이다.
그동안 세간에 출간된 서적이나 대중매체에서 작품에 대한 세밀한 검토는 하지 않고 앞뒤의 전개과정도 생략한 채 작품을 인용하면서 혜경궁 홍씨를 정치적 야심이 강한 여걸로, 또는 친정을 위하여 남편을 정신병자로 묘사하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부각하여 왜곡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혜경궁 홍씨와 그녀의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한중록’과 “조선왕조실록”을 중심으로 비교 검토하여 인간 혜경궁 홍씨를 재조명하였다.
모든 고통을 감내하며 여든이 넘도록 살아야 했던 혜경궁이, 그 한의 고리를 엮어 낸 한중록으로, 세월을 넘어 비극의 원인과 생명력 있는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혜경궁 홍씨는 어떤 인물이었는가
한중록의 작자인 혜경궁 홍씨는 아버지 홍봉한과 어머니 한산 이씨의 4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나 사도세자의 아내가 되어 1남 2녀를 낳았다. 그러나 그녀는 시아버지인 영조가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여 곁에서 남편의 참혹한 죽음을 직접 겪었으며, 훗날 그의 아들(정조)이 왕위에 오르나 양자로 보냈기 때문에 생전에는 왕비에도 오를 수 없었다. 더욱이 두 번에 걸쳐 친정 집안이 화를 당하게 되자 자신의 한恨을 한중록이라는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허락한 어머니(내 묘에는 풀도 나지 않으리라)
생모인 영빈이씨는 아들을 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성궁聖躬을 보호해 종사宗社를 붙들어야 하고 삼종혈맥(三宗血脈, 효종, 현종, 숙종)이 세손에게 있으니 세손을 구해야 한다고 했다. 생전에 “내가 아들을 죽이는 못할 짓을 하였으니 내 자취에는 풀도 나지 않으리라”고 한 말에서는 아들을 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장인(홍봉한)이 사도세자를 위해 뒤주를 준비했다
정조는 보위에 오르자마자 외가인 풍산 홍씨 집안을 치기 시작하여 어머니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것은 아버지를 가둔 뒤주를 외할아버지인 홍봉한이 들이게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정조는 후일 어머니께 “뒤주는 자상(영조)이 생각해 낸 것이며 봉조하(홍봉한)께서 영조께 여쭙지 않은 것은 그날 사건의 전후로 보아 알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조는 외가를 적으로 생각했다
정조는 즉위 초에 홍봉한이 임오화변 때 뒤주를 들인 사건과 은언군, 은신군과 관련된 역모 사건, 그리고 고모인 화완옹주로 인해 생긴 대리첨정에 대한 오해로 자신이 처분했던 외가 일을 후회하며 갑자년이 되면 세자(순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수원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즉위 초에 어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외가의 모든 일들을 풀리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는 무수리였을까
무수리는 궁인들이 입는 아름다운 옷과는 달리 머슴들이 입는 우중충한 긴 저고리를 입고 치마 중간에는 넓은 허리띠를 매어 패를 차고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였으므로 힘이 센 기혼자들이 대다수였다. 7세의 어린 소녀가 물 긷기, 불 때기 등 잡일을 할 수 없으므로 무수리로 입궁할 가능성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수문록”과 “정읍군지”의 일화는 역사적 사실과 궁중 풍속에 맞지 않으므로 “영조실록”에서 전하는 숙빈에 대한 서술을 참고해 보면 고종 후궁들이 전한 침방나인설이 좀 더 설득력이 있다.
✻조선을 끝까지 지킨 사도세자의 후손들(정조, 철종, 고종)
사도세자는 젊은 나이에 삼종의 혈맥을 보존하기 위해 비극적인 죽음으로 마감했다. 그러나 조선조가 멸망할 때까지 생명력을 지녀 왕족의 혈통이 끊어질 위기 때마다 그가 이 세상에 남긴 세 아들로 대통을 이었다. 즉 영조 승하 후 적자 정조가 왕권을 이어받아 순조, 익종, 헌종으로 전해졌고, 헌종에게 후사가 없어 왕통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그의 서손(庶孫)인 사도세자의 2남 은언군 인의 손자인 철종이 왕권을 이었다. 사도세자의 3남 은신군 진은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병사했으므로 후사가 없어서 인조의 3남인 인평대군의 6대손 남연군 구를 양자로 삼았었다. 남연군은 4남을 두었고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4남인 흥선군의 둘째 아들이 대를 이었다. 그분이 고종이다.
이 책은 혜경궁 홍씨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조금이나마 바로잡고자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작품과 역사적 기록을 통해 다시 검토하였다. 1부는 한중록이라는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와 더불어 혜경궁 홍씨의 삶과 한을 논의하였으며, 2부에서는 혜경궁 홍씨의 남편인 사도세자와 아들 정조, 그리고 두 딸인 청연군주와 청선군주, 즉 그녀의 직계가족의 삶과 작자의 삶을 연결하여 얘기하였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시아버지인 영조, 세 분의 시어머니인 정성왕후와 정순왕후, 영빈이씨, 그리고 시누이인 화평옹주와 화완옹주를 한중록과 “조선왕조실록”을 중심으로 비교 검토하여 혜경궁 홍씨의 삶을 재조명하였다.
정조는 후일 어머니께 “뒤주는 자상(영조)이 생각해 낸 것이며 봉조하(홍봉한)께서 영조께 여쭙지 않은 것은 그날 사건의 전후로 보아 알 수 있다” 또한 “그날 처분은 영조가 종사를 위하여 의리로 하여 결단할 때 신하의 말을 듣고 뒤주에 가두었다면 선왕의 덕이 손상될 뿐 아니라 대의리大義理도 가려지고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도 의義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작자는 이러한 처분들이 고모 화완옹주和緩翁主와 할머니 정순왕후貞順王后 측의 이간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당시의 상황에서는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었다.
-119~120페이지
아들이 죽은 후 매일 밤 동편 툇마루에 앉아 동녘을 바라보며 “혹시 그때 동궁을 죽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라가 보존되지 않았겠는가? 그러면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다가는 “아니다. 그렇지 않다. 여편네 유약한 소견이 내 어이 잘못 하였으리오”를 반추하면서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아들의 혼궁에 가면 울부짖고 서러워하던 고통이 병이 되어 그녀 자신도 2년 후엔 아들 곁으로 갔다. 생전에 “내가 아들을 죽이는 못할 짓을 하였으니 내 자취에는 풀도 나지 않으리라”고 한 말에서는 아들을 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세월을 넘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영조 40년 7월 26일,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는 경희궁 양덕당養德堂에서 69세로 한 많은 생을 마감한다.
-269~270페이지
정은임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궁정실기문학연구’로 문학박사 학위 받음.
현재 강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
저서 “궁정문학연구”, “한중록”(교주), “인현왕후전”(교주),
“계축일기”(교주), “궁궐사람들의 삶과 문화”,
“문학의 창으로 본 조선의 궁중문화 1(삶과 죽음의 공간)”.
공저 “고전소설연구”, “고전산문연구”, “한국노년문학연구”(총 4권),
“설화문학연구 하”, “고소설연구사”, “옛 여성들의 삶”,
“동아시아 문학과 여성”, “우원 이호빈 목사의 신학과 사상”,
“동아시아 여성문학의 지평” 등이 있으며
그 밖에 다수의 논문이 있다.
책머리에
○ 제1부 한중록과 혜경궁 홍씨
1장 한중록은 어떤 작품인가
1.한중록은 10년 동안 네 번 쓴 작품을 모은 것이다
2.한중록의 제목은 작자가 붙인 것이 아니다
3.한중록은 수필 양식으로 서술한 궁중실기문학宮中實記文學이다
4. 한국문학사에서 한중록의 위상
2장 한중록의 작자 혜경궁 홍씨
1. 혜경궁 홍씨의 출생담
2. 정명공주 후손으로서의 자긍심
3. 세자빈으로 간택되다
4. 세자와 가례嘉禮를 행하다
5. 궁궐 생활이 시작되다
6. 기사년(영조 25년, 1749)에 관례와 합례를 하고 세자의 대리정사가 시작되다
7. 2남 2녀를 생산하다
8. 혜경궁 홍씨의 한限
○ 제2부 혜경궁 홍씨의 직계가족直系家族
3장 소천所天 사도세자
1. 탄생 시에 예견된 비극
2. 갈등의 원인과 그 증세
4장 정신적 지주인 아들 정조正祖
1. 원손元孫 탄생의 기쁨
2. 관례와 가례
3. 을미년乙未年에 대리정사代理政事를 하다
4. 조선조 22대 왕이 되다
5. 아버지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다
6. 갑작스러운 죽음
5장 두 딸 청연군주淸衍郡主와 청선군주淸璿郡主
1. 청연군주
2. 청선군주
○ 제3부 혜경궁 홍씨의 시가媤家
6장 남편을 뒤주에 가두어 죽인 시부媤父 영조
1. 어머니는 무수리였었나
2. 극단에 치우친 이상성격
7장 세 분의 시어머니姆母
1. 정성왕후貞聖王后
2. 정순왕후貞順王后
3. 사도세자 생모 영빈 이씨暎嬪李氏
8장 시누이 화평옹주와 화완옹주
1. 화평옹주和平翁主
2. 화완옹주和緩翁主 정처鄭妻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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